이번 주 볼 만한 전시추천 5

2018년 2월 넷째 주에 보러 갈만한 전시추천 목록

그녀들은 최선을 다했다

 

박영숙 사진전 <두고 왔을 리가 없다>

여성의 초상은 종종 어떤 ‘대상’으로 대체된다. 1930년대 도로시아 랭의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중 가장 유명한 <이주민 어머니>는 대공황 속에서 갈 곳 잃은 농민들의 처연한 상황을 극적으로 드러냈고, 애니 레보비츠가 찍은 <롤링스톤지> 표지 속 존 레논의 키스를 받는 오노 요코는 한 예술가의 영원한 뮤즈 그 자체를 보여줬다. 여성 포트레이트 사진의 역사와 특징을 일일히 나열하지 않더라도 박영숙 작가가 1981년에 찍었다는 인물들을 본다면, 뭔가 조금은 다른 점을 눈치챌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연인, 누군가의 엄마, 어떤 집안의 며느리가 아닌, 자신의 직함을 달고 있는 여성들이 카메라 앞에 서 있다. “내가 난데, 무슨 수식어가 필요하지?” 30년도 더 된 사진 속, 40세의 그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by SOJIN LEE

39살, 문득 돌아본 삶의 기로에서

전시의 시작점에 쓰여진 작가 노트에서 박영숙 작가는 36명의 포트레이트를 찍게 된 연유를 간략히 밝혔다. “1979년 여름, 나는 인물 사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39살의 나는 유방암이라는 판정에 두 다리가 휘청거려 주저앉을 것 같았다. 이 작업은 마흔이라는 나이 앞에서 지난 39년을 뒤돌아 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난 뭔가 그럴듯한,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런 내가 되려고 그간 달려왔던 것이었다. 그런 나 자신에게 ‘너도 별 것 아니구나’ 싶었다… 내 삶이 여기 까지 였구나 싶어 슬펐다. ‘철없이 꿈만 많던 내가 벌써 마흔이라니’하며 나이 마흔의 나를 처음 만났던 것 같다. 내 주변의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모두 뭔가 꿈을 이루어 누구누구라는 수식어가 붙여진 인물들이 되어 있었다.”

무사히 퇴원 수속을 밟은 박영숙은 누워 있는 동안에도 오락가락 떠올랐던 친구들을 찍기 시작했다. 그가 부러웠던 친구들은 시인, 소설가, 작곡가, 성악가, 연극배우 등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길을 걷던 이들이었다. 작품 제목도 ‘최욱경, 화가’ 식으로 이름과 직업만 밝혀 놓았다. 심플하다. 화가는 화가대로 작업실에서, 농구선수는 선수대로 코트장에서 포즈를 취했을 뿐 그 이상의 과장이나 수사는 없다. 오직 찍는 사람의 지긋한 응시만 있을 뿐. 인물들이 이토록 자연스럽고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편한 친구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영숙은 ‘그들을 기록하는 일이 내 의무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덕분에 2018년의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1981년에 이런 멋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변화무쌍한 세월을 살아낸 언니들의 이야기

오늘날의 멋진 언니들은 어디 있을까. 20층에서 열리는 <36인의 포트레이트>를 보고 나서 19층으로 내려가면, 전시의 2막이 펼쳐진다. 박영숙은 자신보다 연배 높은 80~90대의 여성 7명의 삶을 경청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들이 살아온 세월 안에는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인생 속 지팡이가 있지 않을까. 극단장 이병복, 판소리 명창 최승희, 故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 화가이자 패션디자이너인 김비함, 기업인의 아내 박경애, 안동할매청국장집을 운영하는 이상주, 갤러리 대표 이은주가 그 주인공으로 각각 마련된 7개의 방마다 사진과 인터뷰 영상이 설치되어 있다. 그들의 인생이 연극 무대가 된 듯 각 방을 나누는 파티션마다 화려한 벨벳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박영숙은 그들의 공간을 찾아가 조곤조곤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세월은 어느 순간 속사포처럼 쏟아진다. 삶 속에서 맺은 가족과의 관계, 자신의 길을 걷게 된 계기, 누군가와의 인연 그리고 한맺힌 사연이 그들의 육성에 의해 전해지는 경험은 특별하다. 인터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보통 20세기 초반생으로,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몸소 겪은 세대다. 여성이라서 했던 일들, 여성이라서 하지 말하야 했던 일들의 선택지 속에서 자신이 믿는 것은 굳게 지켜온 여성들이며 또 그럼에도 두고 온 것들, 못한 일들에 대한 미련을 툭 던져 놓을 수 있는 어른들이기도 하다. 7명 모두 다 다른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공통점은 하나 있다. 이 변화무쌍한 세월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 찬란한 삶의 기쁨도 세월을 타면 이별이라는 종착지에 달한다. 언니들의 삶은 그런 인생을 사는 우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는 묵직한 위로다. M.A

가치 개념이 많이 바뀌어 가는 변화무쌍한 세월들을 다 감당해 내었다. 그녀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그녀들의 삶은 매우 찬란했고, 현란했다. 그래서 오늘 여기 이곳에 서있을 수 있다.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고, 주어진 소명을 다 감당하고, 모두 극복하였기에 여기에 서있는 것이 감동이다. 같은 시대를 서로 다른 형편으로 서로 다르게 살아낸 그녀들의 삶이 그래서 소중하다. 그렇게 일곱 명의 여인들이 모여 서로 어우러지니 서로가 빛난다.

-박영숙 작가 노트 중-

* 박영숙은 1975년 사진 작업으로 참여하게 된 단체전을 시작으로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였고, 여성미술연구회에 가입해 사진가로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왔다. 또한 1997년에는 여성작가협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이후〈마녀, 〈우리 봇물을 트자〉그리고〈미친년 프로젝트〉등을 통해 그동안 흔히 다루어지지 않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꾸준히 작업해왔다.

 


박영숙 사진전

<두고 왔을 리가 없다>

2017년 12월 16일 ~ 2018년 2월 17일

한미사진미술관  바로가기


*전시의 주인공 중 한 분인 이병복 선생님이 작년 연말에 소천하셨다. 1세대 연극 무대미술가로 극단 자유를 이끌어온 연극계의 개척가 한 분의 인생을 깊이 추모한다.

Caption 

이병복, 극단 자유 대표 ⓒ박영숙 그 외 전시 전경

이소진 (sojin.chloe.lee@gmail.com)

사진  월간미술 미디어콘텐츠, 한미사진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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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비추는 일렁이는 수면 같은 전시, 리오넬 에스테브 <나르시스>

 리오넬 에스테브 : 나르시스

2018년 1월 24일 – 2018년 3월 10일

페로탕 갤러리 서울

https://www.perrotin.com


Lionel Estève, Untitled (Mirror), 2016, Porcelain, colored underglaze, crystallizations, platinum
70 x 70 cm / 27 9/16 x 27 9/16 © Estève / ADAGP, Paris 2017
Photo : Clair Dorn / Courtesy Perrotin

페로탕 갤러리 서울은 1월 24일부터 3월 10일까지 리오넬 에스테브(Lionel Esteve)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리오넬 에스테브는 프랑스에 위치한 국립 도자기 제작소 (Manufacture nationale de Sèvres) (이하 세브르) 장인들과 협력하여 만든 도자 작업들을 선보인다. 1740년에 설립된 세브르는 처음에는 왕립, 이후 황실, 마지막으로는 국립 기관의 주문에 양질의 제품을 공급해 왔다. 작가는 이곳의 장인들과 협업하여 도자기 명판을 세밀하게 가공하는 방식으로 지난 4년간 작품을 해왔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최신 작품들을 선보인다.

리오넬 에스테브는 프랑스 출신 현대 미술가다. 전통적 제작방법에서 벗어나 재료에 국한되지 않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철사, 실, 플라스틱, 돌, 종이, 도자기 등 다양한 재료로 유기적인 형태를 만들고 다채로운 색을 사용한다. 그의 작업은 평면, 조각, 설치를 모두 아우르며 공간에 대한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다채로운 색감을 통해 인지의 영역을 넘나드는 그의 작품은 마치, 색감이 빠르게 혹은 천천히 움직이는 듯한 환영을 준다. 그가 주로 작업해 온 방향은 다양한 재료와 색감을 사용해 감각 인지를 확장시키는 방식이다.

Lionel Estève, Untitled (Mirror), 2015 (Detail), Porcelain, colored underglaze, crystallizations, platinum, 31 x 31 cm / 12 3/16 x 12 3/16 in
© Estève / ADAGP, Paris 2017
Photo : Clair Dorn / Courtesy Perrotin

리오넬 에스테브가 이번 페로탕 전시에서 선보이는 도자 작업들은 은은히 빛나는 액체 표면을 닮았다. 전체적으로 은색 플래티늄 도금을 씌운 작품 표면에는 동전 크기만 한 구멍들이 나 있다. 작은 동그라미 구멍들 사이로 다채로운 색감의 도자가 드러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물 고인 웅덩이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형상 같다. 리오넬 에스테브는 작품을 통해, 인간이 수면에 반사된 형태를 보며 자신의 모습을 고찰했던 순간들을 회상시킨다. 그는 이 작품들에 대해 “빗물이 고인 웅덩이들, 폭우의 파편들, 심연의 투영이다. 즉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던 곳이다”라고 전했다. 리오넬 에스테브는 약 한 달 반 동안 진행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인간과 자연이 갖는 감성적 관계를 이야기한다.

페로탕 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리오넬 에스테브의 <나르시스>전시를 관람하며 스스로를 향한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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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페로탕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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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monthlyart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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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 무한한 시공간을 표류하는 듯한 <에픽 상하이> 전시

조덕현 : 에픽 상하이

2018년 1월 19일 – 2월 20일

PKM 갤러리 

http://www.pkmgallery.com


조덕현은 PKM 갤러리에서 2018년 1월 19일부터 2월 20일까지 개인전을 펼친다. ‘Epic’은 서사시, 혹은 장편서사영화라는 뜻이다. <에픽 상하이>는 이미 세상을 떠난 어떤 (가상) 인물의 실존을 추적하며 그 삶의 다양한 국면을 들추어 시각화하는 서사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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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인물 조덕현의 20대 상하이 시절’

<1935>, 2017, Graphite & acrylic on oriental paper, 391x582cm , 조덕현 (사진제공: PKM갤러)

조덕현 작가(61)는 상하이 출신의 소설가 미엔미엔(棉棉)과 협업하여 이야기를 만들었다. 주인공은 작가와 같은 이름인 ’조덕현’. 1914년에 태어나 험난한 20세기의 격랑을 헤쳐 나가다가 1995년에 고독사했다. 가상 인물 ‘조덕현’의 말년 정황은 이전 전시(꿈 Dream,2015년 일민미술관)에서 작업으로 언급된 바 있다. 이번 전시엔 덕현의 20대 시절이자 상하이 생활을 다룬다. 남 주인공 외에도 1930년대 상하이의 전설적인 여배우 완령옥(阮玲玉), 조선에서 건너가 상하이의 슈퍼스타가 되었던 김염(金焰), 당대의 아이돌인 배우 겸 가수 저우쉬엔(周璇)등 다수의 실존 인물들과 여주인공 홍(紅)이 공존하며 서사에 흥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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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상하이’

작가는 20세기 초반 동서양의 자본이 밀집되며 세계 5대 도시로 꼽힐 만큼 급성장했다가 사라진 ‘올드 상하이’라는 시공간을 현대에 소환한다. 올드 상하이(현재의 상하이와 구별하기 위해 중국인들이 붙인 명칭)는 화려한 기억으로 현대인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하지만 올드 상하이는 동양과 서양, 전근대와 근대, 식민과 탈식민의 여러 가치가 극단적으로 대립했던 곳이기도 하다. 계층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온갖 문제가 끊이지 않아 범죄와 테러, 국지적인 전투가 빈번했으며 전쟁의 징후 등 두려운 예감이 엄습하던 뒤숭숭한 곳이었다. 작가는 그 독특한 시공간에서 얼핏 현재 글로벌 세계의 모습을 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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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초월하는 이미지들의 중첩’

<꿈꿈>, 2017, Graphite & acrylic on oriental paper, 391x582cm , 조덕현 (사진제공: PKM갤러)

출품작 중 초대형 회화인 <1935>는 에픽 상하이의 서사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화면에는 가상과 실제 요소들이 뒤섞여있다. 실존 인물과 허구 인물, 과거와 현재, 그리고 실제 상하이의 모습과 영화 세트 등 각각 다른 시공간의 이미지들이 중첩한다. 이런 레이어들 간의 충돌과 조화를 읽어내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발생하는데, 이는 장편 서사를 시각적인 한 장면으로 표현하는 ‘미적 실험’으로 문학이나 영화 등 서사 위주의 장르와는 다른 방식의 독해법을 요구한다.

<꿈꿈>의 경우 상징성이 더욱 농후하다. 작품 속엔 근현대의 온갖 전쟁과 재난 난민들이 한데 모여있다. 작가는 세계대전의 난민, 팔레스타인 난민, 이탈리아 지진 피해자까지 세계적인 사건의 피해자들을 수몰되는 올드 상하이를 배경으로 배치하였다. 이런 격렬한 구도는 바로크 회화나 낭만주의 회화를 연상시키며 대재앙의 광경을 연출한다.

Midnight Shanghai1, 2017. Mixed media on oriental paper, 100 x 100 cm . 조덕현 (사진 : PKM갤러리 제공)

이 외에도 현대 상하이 번화가 ‘난징루’의 네온사인 간판들을 모티브로 한 <미드나잇 상하이>, 올드 상하이 시절부터 존재하는 건물들을 찍어 명암 반전을 이룬 사진 작업 <메티포>,  전시 동선 마지막에 위치한 영상 설치작업인 <에픽 상하이> 등 조덕현의 신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올드 상하이와 현재 상하이 속에서 마치 무한한 시공간을 표류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주는 조덕현의 전시는 2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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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PKM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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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monthlyart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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